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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성공했지만 대장암 선고받아... '저탄고지'의 치명적 함정


비만이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면서 체중 감량을 위한 다양한 다이어트 방법이 유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탄수화물 섭취를 최소화하고 지방 섭취를 늘리는 '저탄고지' 식이요법은 단기간에 체중 감량 효과를 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충격적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저탄수화물 식단이 대장암 발병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대장암은 전 세계적으로 3번째로 흔한 암으로, 매년 약 1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치명률이 낮은 갑상선암을 제외하면 암 발생자 수 1위(2021년 기준 3만 2751명)를 차지할 정도로 발병률이 높다. 이처럼 심각한 대장암의 발병 원인으로는 식단, 장내 박테리아, 염증, 유전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론토 대학교 연구진은 저섬유질 식단, 특정 장내 박테리아, 그리고 대장암 사이에 매우 우려스러운 연관성을 발견했다. 특히 린치 증후군(Lynch syndrome)과 같은 DNA 불일치 복구결함(MMR)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저탄수화물 식단을 장기간 유지할 경우, 연구자들이 '완벽한 폭풍'이라고 표현한 대장암 발병 조건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대장암 폭탄'을 맞을 위험이 극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올로지'(Nature Microbiology)에 최근 발표된 이 연구에 따르면, 저탄수화물·저섬유질 식단이 특정 대장균(E. coli·이콜라이)과 결합했을 때 암 발병 위험이 급격히 증가한다. 구체적으로는 이콜라이 NC101이라는 박테리아가 콜리박틴(colibactin)이라는 독소를 생성하는데, 이 박테리아는 대장암 환자의 약 60%에서 발견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저탄수화물 식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경우 장내 미생물 군집의 균형이 깨지면서 이콜라이 NC101이라는 박테리아가 비정상적으로 번성하게 된다. 이 대장균은 콜리박틴이라는 DNA 손상 물질(독소)을 생성하는데, 이 독소는 저탄수화물 식단으로 인해 발생한 염증으로 얇아진 대장 보호막을 뚫고 대장 세포에 침투해 용종(polyp) 발생을 촉진한다. 용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성 종양으로 발전할 위험이 매우 높다.

 

연구진은 이러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대장암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테로이데스 프라질리스(Bacteroides fragilis), 헬리코박터 헵파티쿠스(Helicobacter hepaticus), 그리고 이콜라이 NC101(E. coli NC101)에 감염된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쥐들은 각각 균형 잡힌 식단, 저탄수화물 식단, 서구식 식단(고지방·고당분)을 섭취하도록 했으며, 이후 대장 건강 상태를 면밀히 관찰했다.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단 하나의 조합, 즉 콜리박틴을 생성하는 특정 대장균에 감염된 상태로 저탄수화물 식단을 섭취했을 때만 대장암이 발생했다. 저탄수화물 식단을 섭취한 쥐는 다른 식단을 섭취한 쥐보다 훨씬 많은 대장 용종이 생겼으며, 그중 상당수가 암으로 발전하는 징후를 보였다. 특히 저탄수화물 식단을 섭취한 쥐들은 다른 쥐들에 비해 대장의 점막 층이 현저하게 얇아졌는데, 이렇게 보호막 역할을 하는 점막 층이 얇아지면 독소인 콜리박틴이 대장 세포에 더 쉽게 침투해 DNA를 손상시킴으로써 암 종양의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일반적으로 건강에 좋지 않다고 알려진 서구식 식단(고지방·고당분)은 예상과 달리 동일한 암 촉진 효과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대장암 발병의 핵심 요인이 고지방이나 고당분이 아니라 섬유질 함량이 낮은 것임을 확인했다. 이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체중 감량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섬유질 섭취 부족으로 인한 장 건강 악화가 더 심각한 건강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콜리박틴을 생성하는 특정 대장균(E. coli NC101)은 대장암 환자의 60%, 장 질환 환자의 40%, 그리고 건강한 사람의 20%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미 이 위험한 박테리아를 체내에 보유하고 있으며, 저탄수화물 식단을 장기간 유지할 경우 대장암 발병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실험 결과가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전에 진행된 두 가지 인체 연구 데이터를 추가로 분석했다. 그 결과, 실험용 쥐에서 관찰된 현상이 인간에게도 유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도 연구진은 이러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제시했다. 저탄수화물 식단에 수용성 식이섬유의 일종인 이눌린(inulin)을 추가할 경우, 암 발병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눌린이 포함된 식단을 섭취한 쥐는 저탄수화물 식단을 계속 유지하는 동안에도 염증과 용종 발생이 현저히 감소했으며, DNA를 손상시키는 독소를 생성하는 대장균의 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논문의 제1저자인 부페시 타쿠르 박사는 "섬유질을 보충하자 저탄수화물 식단의 악영향이 상당히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구 책임자인 알베르토 마틴 교수(면역학)는 "우리 연구는 일반적인 체중 감량 식단인 저탄수화물, 저섬유질 식단을 장기간 실천하는 것과 관련된 잠재적 위험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DNA 불일치 복구결함이 있는 사람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실험 결과, DNA 불일치 복구결함이 있는 쥐는 콜리박틴을 생성하는 대장균에 감염됐을 때 정상 쥐보다 훨씬 많은 용종이 발생했다. 불일치 복구결함은 선천적으로 MMR 유전자가 결핍되어 잘못 결합된 DNA의 복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MMR 결함이 있는 사람이 저탄수화물 식단을 지속할 경우, 대장암 발병 위험이 일반인보다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염증성 장 질환(궤양성 대장염, 크론병, 베체트 장염 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이콜라이 NC101 대장균 보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저탄수화물 식단을 장기간 유지할 경우 대장암 발병 위험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단기적인 체중 감량 효과에만 집중하여 무분별하게 저탄수화물 식단을 실천하는 것의 위험성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건강한 체중 관리를 위해서는 균형 잡힌 영양소 섭취와 함께 충분한 식이섬유 섭취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연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