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이 한국을 '테러지원국'과 같은 명단에 넣은 충격적 이유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포함시킨 배경에는 한국 연구원들의 보안 규정 위반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DOE는 한국 외교부에 이 같은 사실을 설명했으며,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 방문이나 공동연구 과정에서 한국 연구원들이 보안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이 사태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다"라고,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는 "큰 일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순한 보안 문제로 미국이 한국을 SCL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은 테러우범국이나 제재대상국과는 전혀 다른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DOE는 한국 정부에 "기술 보안과 관련해 한국인이 연루된 더 '심각한 위반'이 있었고, 그것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유"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한국에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SCL에 포함시켰으며, 한국 정부는 두 달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인지했다.

 

구체적인 '심각한 보안 위반' 사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DOE 감사관실이 지난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의 도급업체 직원이 수출통제 대상인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 정보를 소지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적발돼 해고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이 사건이 DOE의 민감국가 지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셉 윤 대사대리는 "한국이 명단에 오른 것은 일부 민감한 정보에 대한 취급 부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연구를 위해 에너지부 산하 실험실에 가는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일부 사건이 있었고, 그래서 이 명단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미국을 오가는 한국 연구 인력은 연간 2,000명이 넘는다.

 


해외 안보기술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순 보안 규정 위반이 아니라 한국 정부나 공기업 등이 보안 위반 과정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만약 한국 정부가 연구원의 정보 유출 배경에 있다면 문제의 심각성이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 DOE 산하 방첩정보국은 규정에 따라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할 수 있다. 1999년 미 의회에서 DOE는 '민감국가'를 "미국에 위험하거나 핵무기 또는 핵 관련 비밀을 얻고자 하는 국가"라고 규정한 바 있다.

 

한국 정보당국의 연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DOE 보고서에는 해당 직원이 이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외국 정부'와 소통해 FBI와 국토안보국이 수사 중이라고 적시했다. 이 '외국 정부'가 한국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심각한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외교부의 대응도 문제로 지적된다. 조태열 장관은 처음에 이 사안이 "일회성일 가능성이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DOE가 한국의 SCL 포함 사실을 공식 확인하자 "사안을 중대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태도를 바꿨다. 외교부의 공식 입장문도 뒤늦게 나왔으며, 이재웅 대변인은 "미 측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는 답변에 그쳤다.

 

한미 외교 소식통은 "여러 채널에서 대화가 이뤄졌지만 직접적인 이유를 명확하게 들었다고 할 수는 없는 사안"이라며 "다만 NSC나 국무부에 공유되지 않은 내용인 만큼 DOE 차원의 행정 조치로 봐야 한다는 말도 맞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한미 기술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임스 스코프 사사카와 평화재단 선임연구위원은 "SCL 지정은 해당 국가의 연구기관과 연구진에 더 주의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미로, 새로운 민감한 기술 협력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보안 문제와 함께 핵무장 담론 등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R&D 현장의 우려를 표했다.